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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영화티켓이 있었는데 원래는 <사마에게>를 보고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맞는 영화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득 누군가 며칠전 올려주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영화를 찾아보았더니 퇴근길 관람이 가능한 곳이 있어 보게 되었다. 퀴어 영화라는 것 외엔 모르고 보러간 영화였지만 작년 제72회 칸 영화제(2019)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이자 각본상·퀴어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가 왜 달렸는지 충분히 공감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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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한 초상화를 거부하는 여인과 그녀의 초상화를그려야하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림을 발표하지도 못하는 여류화가의 사랑이야기, 이상의 영화의 줄거리는 세세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단선적이고 직관적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그럼에도 비평가들의 장황한 호평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만의 독특함은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 많은 것들을 다 캐치하면서 볼 능력은 없지만 이 영화에서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이 두 곳 있었다.

 

첫번째는 이 영화의 제목이 되는 위 포스터의 장면으로 마을 축제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인데 불현듯 음악이 터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는 몇몇장면에서 직접 연주되는 음악을 빼면 배경음악 자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순간 엘로이즈가 불타오르는 모습의 배경으로 터져나오는 굉음에 가까운 음악(아카펠라 같다)은 마치 어느 좀비영화의 한 장면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공포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그 장면을 음악으로 박제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나에겐 그 순간이 음악소리로 박제되어버렸다.

그리고 두번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러 간 음악당에서 엘로이즈를 발견한 장면이다. 그 순간 엘로이즈가 보여주는 모습은 박제된 기억이 음악으로 인해 재현되어 꺼내어진 순간 느꼈을 절제된 감정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고 보여진다. 너무도 사랑했던 그 순간이 고스란히 되새김되는 순간의 희열에 찬 고통을 소름돋게 연기해주었다.

선명하게 재현되는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에 고통,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연애를 형벌의 시간이라 표현했나보다.

첫번째 장면이 마리안느에게 박제된 엘로이즈의 모습이었다면 두번째 장면은 엘로이즈에게 박제된 마리안느가 소환되는 순간이라고 느껴졌었다.

퀴어영화 그것도 여성 퀴어영화는 오랜만에 본 것인데 후일담으로 읽은 나무위키의 설명으론 엘로이즈 역의 아델에넬과 시아마 감독이 과거 연인사이였다는 말이 왠지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나에게 퀴어영화 이전에 박제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당신에게도 박제된 기억이 존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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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는 첫번째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으로
영화를 따로 보실 분이라면 이 음악은 영화를 보기전에 듣지 않을 것을 권한다.

https://youtu.be/Sr04s6Ifx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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