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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을 뜨고 일어나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벌써 점심때다
일요일이라고 으레 것 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를 해서 아점을 먹고 월의 마지막 주이지만 독서모임 대신 봉천동으로 향했다.
작년 종로영화국에서 만난 배우가 새로이 직장인 극단에 들어가 주인공으로 연극 공연을 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에 주말 중 하루를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찍었던 영화의 주인공 배우가 일요일 공연에 온다고 해서 시간 맞춰 얼굴을 보기로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스페인관련 책을 하나 들고 집을 나서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버스 안에서는 요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읽기엔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지만 게임을 하는 것은 지장이 없는 것은 눈 건강의 문제인지 내 자신의 집중력 문제인지 헷갈리지만 어찌 되었건 버스에 올라타면 책보다는 모바일 게임을 더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게임보다는 영어 공부를 위해 설치한 어플이라도 들으며 갈까 싶었지만 겨우 1~2주 만에 영어실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했다.
2주 후의 일정이 영 부담스럽다고 느끼며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공연장이 가까워졌고 조금 이른 시간이라 주변에 커피라도 마실까 싶어 두리번 거리다 공연장을 찾던 환을 마주하고 함께 공연 관람을 위해 좌석을 조정한 후 편의점을 찾아 음료와 함께 서로 그간 지내왔던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
오늘 관람하려는 연극 제목은 <밤에 먹는 무화과>였다.
크지 않지만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있는 어느 호텔 그 곳에는 장기 투숙객이면서 글쓰는 사람인 윤숙이 있다. 윤숙은 호텔 직원부터 호텔을 드나드는 여러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윤숙은 지금 묵고 있는 부티크 호텔이 리모델링 되기전 허름한 호텔시절 그 호텔의 청소부였다. 그 때의 기억을 지금 호텔에 청소부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저녁식사에 나온 무화과 맛에 대해 아쉬움을 직원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촬영명소로 소문난 호텔 스튜디오로 싱글웨딩 촬영을 온 젊은 여인들과의 대화에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무화과가 사실은 과일이 아니라 꽃이기 때문에 이름이 잘 못되었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한다.
북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무화과가 먹고 싶어 남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 자신도 무화과에 대한 열망이 다른 무엇인가에 닿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70대 비혼 여성이 중심이 되어 무화과라는 상징을 놓고 펼쳐지는 작은 호텔 속 이야기 아마도 예전에 어느 공연장에서 마주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직장인 극단이라고 해도 오래된 극단이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연기와 무대연출로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그 몰입의 결과였다고 생각되었다.
3.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인 은정 배우와 함께 촬영을 마친 후에 환과 같이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약간 돌아가는 길이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환은 오늘 아이의 생일인데 공연장을 찾은 것이었고 그 만큼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환과 나는 봉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사당으로 가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나는 서울역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환승하는 지하철에 들어섰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어 더 멀리 가는 환이 앉고 나는 마주서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정거장을 지나갔을 무렵 환의 옆에서 "영화 좋아해요"라는 말이 들렸다. 경희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던 한국어가 능숙하지만 티비 속에서 가끔 보던 타일러라는 미국인과 비슷한 외모와 말투를 가진 외국인이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에 환은 "이터널 선샤인"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고 그는 "이터널 선샤인"을 보지 않았지만 미셀 공드리의 "잠(수면)의 과학"을 떠올렸다.
자신을 경희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지금은 다른 학교에서 동양철학과 정치사(?)에 대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소개했고 우리가 단편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에 외국인 배우가 필요하면 자신을 써달라고 말하며 카카오톡 아이디를 환에게 등록해주었다.
이름은 앤드류라고 말한 외국인과 환은 계속 4호선을 타고 이동하고 나는 서울역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왔다.
어쩌면 오늘 은정, 환, 나, 앤드류는 각자의 무화과를 받아들게 된 시간은 아니었을까?
무화과는 꽃이었다.
달콤한 무화과의 꿀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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