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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연극인데 탄탄한 연기와 안정적인 연출 정말 재미있게 보고 눈물도 많이 흘린 공연이었다.
이 연극은 솔직하지(표현하지) 않음과 비겁함을 주제로 만들어진 두 남여의 한시절을 다룬 이야기로 프랑스 작가 마르 카르다날의 장편소설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을 각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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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일명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귀국한 연옥은 사실 위암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집에서 쉬고 있는 그녀에게 언제나처럼 정민이 불쑥 찾아와 매주 같은 요일(목요일)에 만나 주제를 정한 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영옥은 황당한 이 제안을 비웃지만 자연스럽게 정민의 이야기에 말려들어 그 토론의 첫번째 주제로 영옥은 '비겁함'을 선정했다.
영옥이 주제를 비겁함으로 정한 것은 그녀와 정민이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한 기억때문이었다. 정민은 대학교수답게 비겁함을 위해 정의와 대비되는 개념인 용기에 대해 파고들어간다. 비겁은 무엇이고 용기란 무엇인가?
극 중에서 정민은 자신이 평생 비겁함을 살아왔다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그래서 본인이 진짜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비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한자풀이를 이용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존재라는 논리를 이용해서 용기란 자기 자신이 겁이 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극 속에서 정민은 자신이 무엇인가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끝없이 도망치는 존재로 나온다. 사랑했던 여인의 아이가 말한 '아빠'라는 말 한마디에 도망쳤던 사건이나 자신의 아이에 대한 존재를 인식했을 때조차 그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도망친다.
단촐한 구성이지만 안정적이고 탄탄한 연기와 연출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극이었다. 극의 후반부 정민이 외치는 '나는, 비겁한 놈입니다.'라는 절규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수많은 관계의 책임에서 도망했던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민은 비겁할지언정 자신을 속이진 않았다. 언제나 솔직함으로 상대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또다른 용기가 느껴졌다. 그 스스로 증명했던 비겁에 대한 정의에 딱 맞는 삶을 살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와 만용의 경계를 정하기 쉽지 않았다. 어려서 인식했던 비겁자들의 모습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그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용기있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한순간의 무모함으로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위험하게 될 수 있다면 참을 줄 아는 것도 용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임이 커질수록 일반적인 비겁함과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아직도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젊은 시절 느꼈던 용기와 비겁의 정의가 분명 지금과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연극 속에서 남자들의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 죽는 것에 대한 강한 불만과 그리고 아이를 위해 살아남는 여인의 사진에 공감하는 연옥의 모습에도 공감할 부분들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연극에서 다섯번의 목요일을 거쳐 나눈 토론의 주제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었지만 절친한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진지하면서도 때론 코믹한 토론들이 오간다.
연극 전반을 이끌어 가는 것은 영옥의 독백(사실은 방백)이다. 그 독백으로 표현된 그녀의 솔직함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그것이 비겁한 정민을 더욱 움추러 들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 속 두 남여의 수많은 엇갈림에 대해 억지로 눈물을 이끌어내지 않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끊임없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연극이었다.
아마도 주연배우는 페어로 출연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윤유선/성기윤 페어를 추천하고 싶다. 우미화/성열석 페어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우미화배우의 연기는 너무 따뜻했고 성열석배우는 조금 덜 비겁해 보였다.
티비에서만 마주했던 윤유선씨의 음정이 티비 속 목소리와 다르게 초반에 너무 낮아 불안하게 느껴졌는데 극이 끝나고 다른 페어까지 관람하고 나니 그것이 연출된 음정이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너무도 드라이한 그 목소리로 인해 더 큰 공감이 가능했었고 성기윤배우의 어색함 없는 과장은 정말 옹졸한 비겁함이 잘느껴졌었다.
젊은 연옥과 정민을 연기하는 왕보인배우와 김소정배우는 단독 캐스팅인데 두 배우의 캐미와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눈물은 많이 흘렀지만 보고나니 뭔가 후련한 마음이 드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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